[블랙 스완] 리스크는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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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란 책이 있다. 그 책은 TBWA의 CD인 박웅현 님이 읽으면서 도끼 같다고 느낀 책들에 대해 쓴 글이다. 그때는 도끼 같은 책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큰 충격을 주는 책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유영만의 『공부는 망치다』도 같은 의미로 지은 제목이 아닐까. 그게 망치든 도끼든 간에 고정관념 같은 걸 깨부수는 책이겠거니 했지 그때만 해도 그게 정확히 어떤 책인지 와 닿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 책을 만나고 비로소 "책은 도끼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책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알긴 아는데 대충 아는 걸 제대로 알게 해주는 책(혹은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주는 책),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단 걸 알게 해주는 책.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후자와 같은 책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는데 이조차도 이 책의 저자가 하는 말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싶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그동안 읽은 책의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알려주는 책인 이유는 책을 고를 때부터 아주 조금이라도 아는 주제 내에서 고르기 때문이다. 혹은 아예 모르는 분야라면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기존에 그려놓은 게 없기 때문에 고칠 것도 없다. 어쨌거나 두 유형의 지식에 있어 가장 큰 차이는 지식량이 증가하느냐 혹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질적 변화가 일어나느냐인데 이 책은 분명 후자이다.

 

 

우리는 보통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표현하고, 당연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을 구태여 하지 않는데 이는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보면 효율적이다. 그렇지만 철학 시간에서만큼은 정의란 무엇인지, 앎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찰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저자는 내가 너무 자명해서 굳이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며 저명한 학자들까지도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그다음 저서 『안티프래질』을 찾아 읽게 되는데, 『블랙 스완』이 대중들에게 개념을 설명하는 이론편이라면, 『안티프래질』은 실천편이라 보면 된다. 안티프래질은 현재 읽고 있어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 극단의 왕국 

 

블랙 스완 정리
평범의 왕국 vs 극단의 왕국 - 블랙스완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① 개별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평범의 왕국, ② 개별 사건이 불균등하게 전체에 영향을 주는 극단의 왕국. 이 두 개의 왕국을 혼동할 때 비극이 발생한다. 세상은 점차 극단의 왕국에 속하는 영역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그러니까 필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할 때는 한 명의 베스트셀러 작가보다는 각 지방마다 책을 써서 파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만 책을 써서 판매하면 되었고, 설령 옆동네의 작가가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J.K 롤링의 해리포터는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해 판매하고 있고 그녀와 비교한다면 국내 한 무명작가의 판매 부수는 미미할 것이다. 이처럼 물리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의 경우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

 

▣ 블랙 스완 

 

ⅰ. 검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밖에 놓은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이다. 따라서, 검은 백조는 과거의 경험만으로 출연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다.

ⅱ.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 준다.

ⅲ. 검은 백조가 발생하고 나면 사람들은 사후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마치 검은 백조가 예견가능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게 도리어 추후 또다른 검은 백조의 출현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검은 백조는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드문 사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그만큼 충격을 주는 사건을 일컫는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일화가 있는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범하는 어리석음을 명쾌하게 꼬집는다.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날이 갈수록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다들 알겠지만 미국에선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구워 먹는다. 칠면조에겐 매일 같이 먹이를 주고 따스한 보금자리까지 제공해준 주인이 보호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보호자. 그러나 살이 통통하게 오른 천 일째되는 날 예기치 않은 일이 칠면조에게 닥치고, 그로 인한 결과(사망)는 치명적이다. 우리가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처럼 과거의 관찰/경험이 미래를 결정짓는 것으로,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때는 올바로 예측할 수 없고, 극단의 왕국에서는 이런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검은 백조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데 영향을 주는 오류에 대해 하나씩 짚어나가는데 그 중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한 가지인 '확인 편향의 오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블랙스완 인상적인 구절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와 '아니다'의 차이

 

 

찬찬히 생각해보면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런 증거가 없다는 것으로, 언제든지 증거가 나타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검은 백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출현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인데 따라서 이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문제는 논리적으로 가만히 앉아 생각할 때는 이 둘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이 둘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또 동일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가령 항암 치료를 끝낸 환자가 있다고 해보자. 추후 재발 여부를 확인해보기 위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암이 재발하지 않았어요."라고 한다면? 나라면 그 자리에서 한시름 놓았다고 안심했겠지만, 저자는 그 의사가 엉터리니 당장 그 병원을 다니지 말라고 말한다.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할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 암이 재발했다는 증거가 없을 뿐. 미묘한 말장난 같지만 이런 언어적 습관이 누적되어 사고의 흐름을 만들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이 둘을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 사고의 논리적 결함에 대해 그게 의사이던, 저명한 경제학자이던,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이던 신랄하게 비판한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또 책을 읽으며 큰 깨달음을 준 내용은, "우리는 입증이 아니라 부정적 사례를 통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춰 이 문장이 주는 가치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논문을 써봤다면 알겠지만, 우리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기각하는 방식으로 주장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 흰색이 아닌 백조의 존재를 증명하려면 우선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에 반하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단 한 마리의 백조라도 흰색이 아니라면 우리는 흰색이 아닌 백조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백조가 흰색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백조를 찾아 일일이 조사하려 한다면 평생을 다 바쳐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실패는 정말 박수받아 마땅하다. 단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나 실패에도 불구하도 7전 8기 정신으로 재도전하여 끝내 성공해내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 그 자체가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와 같은 극단의 왕국에서 우리가 취할 방법은 '바벨 전략'이라 말한다. 대부분의 책 내용은 무지한 우리에게 극단적인 왕국의 특성과 블랙스완의 개념, 그리고 우리가 블랙 스완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히는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정작 우리가 취해야 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깊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미 개념적인 계몽을 시켜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다했다고 본다.

바벨 전략은 바로 역기를 들어올린 역도 선수처럼 양극단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 재산을 중간 정도의 위험이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85~90%)의 자산은 극히 안정적인 투자처에, 나머지(10~15%)는 가장 투기적인 곳에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투기적인 곳이라는 것인데, 가장 투기적인 곳에 최소한의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손실은 최소화하되 일어날 수 있는 최대 이익의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무작위성이나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못 견뎌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것을 예측하려고 하고, 그에 대한 사후적인 설명까지 동원해가며 그것을 설명하려 드는 것이 우리의 특성이라 말한다. 그러나 도리어 이러한 무작위성, 추후 『안티프래질』에서 설명하듯 옵션을 활용하여 삶을 산다면 구태여 예측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익이 손실을 능가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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